인문대학 불어불문과 이영석 교수 인터뷰

글번호
389322
작성일
2024-06-11
수정일
2024-06-11
작성자
홍보팀 (032-835-9490)
조회수
1099


인천대학교 인문대학은 1979년 개교 이래 시대의 필요에 부응하는 기초학문의 토대를 마련하고, 때로는 시대를 선도하는 학문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수, 강사 및 직원, 조교들이 때론 이끌고 때론 뒷받침하면서 서로 간의 협력과 노력을 이어온 바 있습니다. 특히 그 중심에 불어불문과 이영석 교수님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셨습니다. 인문대학에서는 지난 6월 5일, 8월 정년퇴임을 맞으시는 이영석 교수님을 모시고 정년퇴임 기념강연과 함께 아래와 같이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8월 정년퇴임하시는 불어불문학과 이영석 교수8월 정년퇴임하시는 불어불문학과 이영석 교수

[8월 정년퇴임하시는 불어불문학과 이영석 교수]

ಮ 처음 인천대에 부임하신 게 2006년이었습니다. 인천대에 부임하신 첫 해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재직 기간 중 목도한 인상적인 학교의 변화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부임하던 시기에 이러한 질문을 예상했더라면 멋진 답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 두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억의 물줄기를 따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망각의 그림자가 길을 막습니다. 제 인생의 테이프를 그 시절로 돌리는 게 한마디로 어렵습니다. 


제가 인천대학교에 부임하여 불어불문학과 학생들, 인문대학 교수들과 조교들을 만난 것은 2006년 일입니다. 당시, 제가 인천대학교에 임용되었을 때 현재의 인천국립대학교는 인천시립대학교이었고 여러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해 나의 인천시립대학교 임용 동기 신임교수들은 대부분 나와 띠동갑에 가까운 나이였고, 내가 최고령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등교하는 첫날, 아직도 차가운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불어 ‘폭풍의 언덕’이라 불렀던 대학의 한 언덕에 있던 인문관이 여전히 눈앞에 선합니다. 도화동 캠퍼스 시절을 보낸 모든 교수님들과 인문대 학생들은 인문대 건물이 있던 폭풍의 언덕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문대 건물에 중앙난방시스템이 없어서 겨울마다 석유난로를 연구실에서 사용한 기억이 남습니다. 열기가 후끈하고, 틈틈이 불멍을 때릴 수 있어서 좋았지만 기름 냄새가 힘들게 했습니다. 


송도캠퍼스로 이전을 하고 모든 교육 시설 상황이 월등하게 좋아졌습니다. 그간 인문대학 교수의 숫자가 두 배 늘었고, 인천대 인문대학이 2020년대 들어 인문계열 한국 대학평가에서 top 11위(2021, 중앙일보 대학평가)와 13위권(2023,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열악한 조건을 넘어선 인문대학 교수님들과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신하게 됩니다. 


인문학적 역량을 가진 인천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님들이 인문학의 미래를 밝고 화창한 날씨로 만드실 것으로 전망해 봅니다.


 오랜 기간 몸담고 있었던 본 대학교에서 올해 정년을 맞이하시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2024년 8월말 정년을 앞둔 6월 좋은 어느 날, 제가 연구와 교육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세월 몸담았던 인천대학교에 대한 짧은 소회를 내놓으려고 합니다. 이제 인천대학교와 작별을 하며 망각을 넘어 기억이 안내하는 대로 과거를 되돌아보니, 인천대학교가 나에겐 중요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선 인천대학교라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거의 일이 지금처럼 기억된다는 데 상당히 행복감을 느낍니다. 나는 인천대학교 인문대에서 무척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복한 시간을 누리게 해준 불어불문학과 교수들, 인문대 교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문대학 교수님들과 함께 마신 와인의 날들은 늘 현재형으로 기억하고 간직하려 합니다. 물론 불어불문학과 학생, 인문대 학생 그리고 인문대 조교들과 행정실 직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행복한’이라는 말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인천대는 든든한 내 삶의 무대였고, 내 인생이었으며, 내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나의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인천대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제 작별할 날이 며칠 남아있지 않은 오늘도 여전히 프랑스 문학과 철학과 예술은 내게 분명치 않고, 나는 나의 게으름의 소치로 나의 결정적 학문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깨달음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전공 작가인 사무엘 베케트에게 배운 무능한 인간의 모습을 처절히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세월 이 작가를 중언부언 늘어놓으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베케트라는 사내를 만나, 그의 연극과 문학을 만나, 난, 늘 즐거웠고, 좌절했고, 부러웠고, 게다가 그를 팔아먹으며 한세상 잘 살았습니다. 


퇴직 이후 앞으로는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세월, 프랑스 문학과 연극에 경도되었던 시절을 겸허하게 정리하면서 인문학의 지평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나는 여생을 바쳐 또 읽고 쓰려고 합니다. 그것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실패를 위한 독서와 글쓰기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읽고 쓰면서 한없이 아름다운 실패, 최악의 실패를 맞이할 것이지만, 여기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고 얼마간의 즐거움을 느낄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프랑스 문학과 철학과 예술로의 여행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학문 세계에 대해 교수님 본인의 견해를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학문 후속 세대, 또는 불어불문학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남겨주세요. 


인문학은 인간과 세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하게 말을 하고 보니 인문학 이야기를 너무 심심하고 싱겁게 시작했네요. 


세계의 정체성과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과 성찰은 우선 독서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인문학의 시작이고 끝 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동사인 ‘읽다’와 ‘쓰다’에 결부되어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라는 천국을 온갖 장서가 가득 찬 도서관이라는 상상력을 펼쳤습니다. 지금 뒤돌아보면 나의 지난 세월은 주로 프랑스 문학과 철학과 예술을 읽고 사유했던 시절이었는데, 이 세월은 나에게 심각한 위기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특정한 역사적 위치에 처하게 된다고 보는데, 내가 대학 생활을 한 70년대와 80년대 어두운 시절엔 당대의 청춘들이 좌절된 희망 때문에 울분 속으로 도피의 세월을 보냈고, 저항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희망 없던 시절에 독서, 프랑스 문학 읽기라는 마지막 안식처에서 숨구멍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 취하기 위해 객기로, 패기로, 좌절로 마셔댔던 술도 있었네요. 다양한 작가들이 이룩한 프랑스 문학에서 보편적 주체로서의 나와 실존적 주체로서의 나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혁명이나 칼 마르크스 관련 책들은 금서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책을 지니고만 있어도 위험했던 어처구니없던 시절이었지요. 물론 오늘날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해방된 책들입니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왔는데, 진보와 전통을 포괄하는 인문학은 인류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자유의 학문이고 해방의 학문이었습니다.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신 박이문 교수의 󰡔파리의 작가들󰡕과의 만남은 나의 전공을 정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21세기도 이만큼 진행된 현시점에서 학문 후속 세대와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과 연구자들에게 한마디 말을 보태고자 합니다. 나는 인문학 위기의 시대, 종말의 시대에 이분들을 인문학의 귀한 동행자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동행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매체들의 등장으로 영상 문명과 문화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시대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는 있지만, 구텐베르크와 직지의 문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과거의 매체와 현재의 매체가 단절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문명의 이동과 새로운 영상문명의 탄생은 과거의 유산인 언어로 된 텍스트 즉 활자 문명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유하는 법을 이끄는 인문학은 단순히 과거에 이룩해 놓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행복은 인문학적 가치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질문을 한 이후,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나에게 묻기, 나에 대해 묻기에 답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의미를 밝혀왔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후속 세대에게 다시 한 번 힘들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의 학문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그 지식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치유하고 회복시킬 인문의사가 될 것입니다.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또 읽으면 잡히지 않던 의미가 나의 내면에서 떠오를 때 느껴지는 문자의 희열, 지적 희열이 있습니다. 책을 느리고 꼼꼼하게 읽고 또 읽으며, 쓰고 다시 쓰며 노트가 해질 때까지 다시 쓰며, 의심하고 비판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다양한 관점을 탐구하여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읽는 고통과 즐거움을 맛보며 우주보다 사이즈가 더 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나도 이 여정에 동참합니다. 늘 위험이 도사린 인문학의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읽다’와 ‘쓰다’라는 동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문학의 꽃은 반드시 필 것입니다. 


  이영석 불어불문학과 교수 소개

학력  1987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불어과(문학사)

        1990 프랑스 파리8대학 불어불문학과(문학석사)

        1996 프랑스 파리4대학 불어불문학과(문학박사)

경력  2006~현재 인천대학교 조교수, 부교수, 교수

        2021~2023 인천대학교 인문대학장, 문화대학원장

        2015~2016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

        2013~2015 인천대학교 한국어학당 원장 

        2004~2006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임연구원

        2003~2004 상명대학교 연구교수

대표논문

      ‘사무엘 베케트의 계열적 글쓰기에 대한 연구’, 불어불문학연구, 1998.

      『부조리극에 나타난 몸짓언어 연구 : 사무엘 베케트와 보리스 비앙을 중심으로』, 파리4대학 박사학위논문, 1996.

연구실적

      ‘‘의사(疑似)드라마’와 극작술 연구-이오네스코의 『의무의 희생자들』’, 인문학연구, 2020.

      ‘베케트의 『말론 죽다 Malone meurt』에 나타난 일인칭 소설 전략과 주체의 탐색’, 세계비교문학, 2019.

      ‘사무엘 베케트의 『몰로이 Moloy』에 나타난 주체의 구성과 소설의 미학화’, 외국문학연구, 2013.

      ‘외젠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과 코믹의 미학 ; 『대머리 여가수』와 『자크 혹은 복종』을 중심으로’, 프랑스학연구, 2017.

      ‘프랑스문화의 분권화 전략과 장 빌라르의 아비뇽 페스티벌 1947-1970’, 인문학연구, 2016

      ‘베케트의 『몰로이 Moloy』의 서사 기법과 팔랭프세스트 글쓰기’, 세계문학비교연구, 2014.

      ‘콕토의 『지옥의 기계 La Machine infenale』에 나타난 연극미학과 극작술 연구’,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3.

      ‘등장인물의 기억, 무대 글쓰기와 정체성의 문제-베케트의 부조리극 연구’, 프랑스어문교육, 2012.

      ‘현대 프랑스 연극에 나타난 소격효과 연구: 콕토의 『지옥의 기계』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중심으로’, 글로벌문화콘텐츠,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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